이번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지난 두 회에 이어 4월 9일 개봉한 영화 <본회퍼: 목사.스파이.암살자>를 다룹니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 및 감독 토드 코라르니키(Todd Komarnicki), 등장인물은 디트리히 본회퍼 역 요나스 다슬러(Jonas Dassler), 마르틴 니묄러 역 아우구스트 딜(August Diehl), 카를 본회퍼 역 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Moritz Bleibtreu), 파울라 본회퍼 역 나딘 하이덴라이히(Nadine Heidenreich) 등 독일 배우들이 맡았습니다. 6.3 대통령 선거를 맞아 오늘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본회퍼, 루터 신학적 개념 계승
정치적 입장에선 루터와 결별
루터, 무장투쟁이나 혁명 불참
농민전쟁 과격성에 적극 반대

본회퍼는 루터의 정치관을 이어받았는가?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모범으로 삼았던 루터는 폭력이 수반되는 혁명을 수긍했는가?

나치에 저항한 목회자이자 정치적 순교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는 루터교 목회자였다. 단지 교단만 루터교 소속이었던 것이 아니라, 마르틴 루터의 신학에 정통한 신학자였다. 

신학적 사상의 초기와 중기, 그리고 후기를 막론하고 그의 저서 전반에서 본회퍼는 주기적으로 루터의 글과 설교를 인용하고 루터가 남긴 신학적 개념들을 계승한다.

그러나 반나치 무장투쟁과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하던 시기의 본회퍼는 정치적 견해 측면에서 루터와는 완전하게 결별한 모습을 보인다. 루터는 살아생전 단 한 차례도 세속 정권에 대한 무장투쟁이나 혁명을 인정하지 않았다.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불의가 있다면 순교를 각오하고 믿음의 논리로 투쟁했을 뿐, 절대 물리적 수단을 동원한 혁명을 지지하지 않았다.

루터의 이러한 입장은 지금까지도 숱한 신학 연구자들 사이에 논란거리로 회자된다. 대부분 신학자들은 루터가 아직 군주나 귀족 중심의 전근대적 정치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석하거나, 과도하게 교회 내부 사안에만 관심을 가져 교회의 사회적 책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런 해석들은 대부분 시민혁명의 역사를 배우며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자라난 이들의 정치관을 반영한 해석이다.

도대체 루터가 반정부 무장투쟁에 대해 어떤 소견을 남겼길래, 그의 정치관이 전근대의 시대적 한계에 묶여 있었다는 비판적 평가가 주를 이룰까?

1524년부터 1526년까지 신성로마제국 여러 지역(오늘날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 지역)에서는 '독일 농민전쟁'이라는 대규모 농민혁명이 일어났다.

이 농민혁명의 이유는 딱히 하나를 지목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했는데, 일단 농노에 가까운 열악한 경제적·사회적 처지에 신음하던 농민들이 종교개혁이라는 격변을 마주하며 사회체제 변화의 기회를 노린 것이 주된 원인이다.

여기에 더해 농민들의 암울한 처지에 연민을 갖고 공감하던 개혁 성향 성직자들이 농민들과 힘을 합쳐 당대 독일 영주이자 대지주로서 기득권층을 이루던 공후(Fürst)들의 폭정을 무너뜨리려 한 것이 독일 농민전쟁의 주 동기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매우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평등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숭고한 혁명으로 보이겠지만, 당시 루터는 자신 때문에 촉발된 종교개혁이 이렇게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악용되는 데 대해 크게 분노했다고 전해진다.

농민전쟁 발발 초기 루터는 약간이나마 농민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봉기 양상이 과격해지자 농민들을 "도둑놈들"이라 부르며 공후들에게 그들의 광기를 엄히 다스릴 것을 권고했다.

▲독일 농민전쟁 발발 지역. 오늘날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 ⓒ핀터레스트 캡처
▲독일 농민전쟁 발발 지역. 오늘날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 ⓒ핀터레스트 캡처 

본회퍼의 정치적 신앙과 순교
영화가 감동적으로 그리지만
그리스도 중심적 감동은 아냐
온전한 모범 보일 순 없었을까

루터의 정교분리 사상에 대한 본회퍼의 실존적 해석의 문제

본회퍼의 관점, 특히 검은 오케스트라 활동에 힘쓰던 시기 그의 관점으로 보면 루터의 이런 귀족친화적 입장은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실제로 본회퍼는 <윤리학>에서 루터 정교분리 사상의 '역사적' 의미를 본회퍼 자신의 시대에 맞는 '실존적' 의미로 재해석한다.

본회퍼는 하나님 나라와 세속 정권을 엄밀하게 분리하는 루터의 두 왕국 이론이 실은 교회와 세속의 엄밀한 분리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본회퍼는 루터가 종교개혁 당시 보였던 실제 행보를 통해 이를 논증한다. 루터는 면죄부 판매나 교황무류성이라는 교리적 논제에 관여된 심각한 부조리를 독일의 공후, 부르주아, 그리고 농민들에게 알리는 데 자신의 삶을 바쳤다는 것이다. 그의 사역은 교회와 세속이 합력해 인간의 죄성을 물리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회퍼는 교회와 세속의 논쟁적 관여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통해 성역처럼 분리돼 있던 교회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일어난 하나님과 세상의 화해를 지속적으로 실현해 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교회는 스스로를 세속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오히려 세속보다 더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세상에 널리 퍼진 부조리와 죄악에 저항하는 숭고한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루터가 교회와 세속을 분리해서 바라본 원래 의도라고 본회퍼는 해설한다.

▲교회와 세속이 논쟁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정치적 정의에 대한 견해를 서로 나누고 협력하는 데 대해, 본회퍼는 그 순기능에 주목했다.
▲교회와 세속이 논쟁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정치적 정의에 대한 견해를 서로 나누고 협력하는 데 대해, 본회퍼는 그 순기능에 주목했다. 

이는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큰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사안이다. 현실에서 교회와 세속의 불가분적 관계를 우리가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루터와 본회퍼가 서로 전혀 다른 방향의 대응책을 알려준 사실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루터의 '두 왕국 이론'에 대한 본회퍼의 해석은 루터가 독일 농민전쟁 당시 농민군 측에 대해 보였던 태도를 생각해 보면, 루터의 본심을 적중한 해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본회퍼는 시민혁명과 자유민주주의가 시대정신을 이룬 정치적 토양 위에서, 루터의 이론을 급진적으로 재구성했다. 교회와 세속이 논쟁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정치적 정의에 대한 견해를 서로 나누고 협력하는 데 대해 본회퍼는 그 순기능을 주목했다.

반면 루터는 교회의 논의를 세속의 영역까지 확산시키면서 종교개혁이라는 결실을 맺었지만, 이는 원래 루터가 의도한 방향이 아니었으며, 그의 종교개혁 시도가 정치적·사회적 개혁으로까지 확산된 것은 당시 유럽 기독교 세계가 뿌리 깊은 정교일치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와 세속의 불가분성과 상호 관여를 적극 수긍하는 본회퍼의 견해는 정치적·사회적 정의를 중심에 두고 하나님의 공의를 새롭게 규정하는 대단히 '정치적인' 시도였다. 그리고 이것이 본회퍼의 견해를 루터의 정교분리 사상보다 훨씬 유명하고 인기 있게 만드는 주 요인이다.

시민혁명과 민주주의를 인류 진보의 궁극적 지향점이자 지고선으로 받들도록 교육하는 사회에서 자라난 이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게도 정치적 선과 정의를 위해 교회의 헌신을 촉구하는 본회퍼의 사상이 압도적 매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반면 루터가 원래 고수하려던 엄격한 정교분리 원칙은 이런 사회적·문화적 배경 속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으로 취급되는 것이 당연하다.

▲영화 <본회퍼>의 논조가 그러하듯, 정치적 순교자와 기독교의 순교자를 혼동하는 처사는 정치적 불의에 대한 신앙인들의 정의로운 대응 모색 과정에서 자칫 심각한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
▲영화 <본회퍼>의 논조가 그러하듯, 정치적 순교자와 기독교의 순교자를 혼동하는 처사는 정치적 불의에 대한 신앙인들의 정의로운 대응 모색 과정에서 자칫 심각한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 

영화 <본회퍼>는 이런 정치친화적 사회적·문화적 배경 가운데 '정치적' 신앙과 순교의 모범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자체는 분명 감동적이다.

그런데 정치적 신앙의 모범으로서 휴머니즘의 감동을 선사하는 것인지, 아니면 종교개혁 전통을 이어받은 개신교적 신앙의 모범으로서 그리스도 중심적 감동을 선사하는 것인지, 적절히 분별할 필요는 있다.

본회퍼의 비극적 죽음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그가 '실존적으로 해석된' 루터의 정치관이 아니라 '기독교적으로 해석된' 루터교 정치관을 이어받았다면, 하나님의 공의를 기반으로 나치의 불의에 '복음적으로' 저항한 자로서 교회에 더 온전한 모범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 <본회퍼>는 이러한 의미로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 좁은문은혜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면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박욱주 교수.
▲박욱주 교수.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