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한국 교회를 둘러싼 담론의 중심에는 제도, 도덕성, 대중과의 괴리 같은 문제들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신간 <인간>은 이 근원적 질문을 향한 치열한 사유와 기도, 통찰의 결과물로, 저자의 오랜 목회적 고민과 철학적 성찰이 농밀하게 녹아든 책이다.
저자는 서두에서 솔직하게 고백한다. "한국 교회에 대해 고민하다가, 갑자기 인간이 궁금해졌다"고. 성경은 명확한데, 교회와 성도, 목회자의 모습은 점점 불분명하게 다가온다는 모순된 현실 속에서,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다시금 천착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인간의 본질을 해명하고자 다른 피조물과의 차이를 살피고, 자유의지와 윤리의 의미를 고찰하며, 결국 인간의 정체성이 오직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비로소 밝히 드러날 수 있음을 설파한다.
생각이라는 양날의 검, 그리고 자유의지의 역설
책의 중심에는 '생각'이라는 주제가 자리한다. 저자는 생각이 인간을 위대하게도 만들고, 동시에 망하게도 만든다고 말한다. 이른바 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양날의 검이다. 이는 단지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신학적 결론이다. 인간에게만 주어진 자유의지(free will)가 선과 악, 창조와 파괴의 갈림길에 서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을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의지적 선택'으로 보고, 이후로 인간의 모든 문명이 이 자유의지의 선용과 남용 속에 발전하거나 타락했다고 분석한다. 과학과 기술, 철학과 예술 등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윤리와 도덕, 종교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냉철한 진단도 뒤따른다.
"정말 발전한 것인가?", "더 오래, 더 빠르게, 더 아름답게 만든 것들이 진짜 인간을 위한 것인가?"라는 저자의 질문은 독자 스스로가 자신이 가진 가치와 삶의 기준을 되돌아보게 한다. 무분별한 발전주의와 외형 중심의 성과주의를 경계하면서, 그는 인간의 '고상한 생각'이 실상 얼마나 근본에서 벗어난 길을 걸어왔는지를 반추하게 만든다.
창조주 없는 인간론은 불완전하다
이 책의 핵심 명제 중 하나는, 인간의 본질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올바로 규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 없는 인간 이해는 마치 "자신의 엔진을 부정하는 자동차"와 같다고 비유한다. 겉보기엔 멀쩡해도, 정작 근본적 기능은 상실된 껍데기일 뿐이라는 날 선 지적이다.
그는 "창조주가 자연과 인간에게 부여한 창조 질서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어떤 진실도 성립될 수 없다"고 말한다. 종교적 확신이 아니라 존재론적 정직함의 문제라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그 존재를 만든 분을 인정해야 하며, 그 속에서 비로소 인간의 윤리와 책임, 삶의 목적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건강과 생명, 그리고 삶의 목적
책의 후반부에서는 현대인의 건강 집착에 대한 신학적·인문학적 성찰이 이어진다. 저자는 "무병장수"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 세태를 비판하며, 건강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건강은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무엇을 위해 건강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한 도덕주의적 메시지가 아니라, 삶의 방향성과 목적론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이어진다. 창조주 없이 무조건 오래 살겠다는 욕망은 허무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스러운 생로병사의 질서 안에서 겸허히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한, 건강도 삶도 그저 공허한 허상에 불과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오늘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이들에게 날카로운 도전이 된다.
존재를 비추는 거울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인간(人間)인가? 당신은 성도(聖徒)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자아 성찰의 권유가 아니다. 그것은 신학적 정체성과 존재론적 근거를 다시금 붙들라는 초청이다. 저자는 이 책이 "희미하게나마 당신의 내면을 비추는 작은 거울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그 거울은 불편할 수 있고, 아플 수 있다. 하지만 그 거울이 없다면 인간은 스스로를 영원히 오해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본 도서는 단순한 기독교 서적이 아니다. 그것은 신학과 철학, 종교와 윤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이라는 신비롭고도 복잡한 존재를 다시금 진지하게 사유하도록 이끄는 책이다. 특히 한국 교회의 현실을 고민하는 독자, 목회자, 신학생들에게는 이 책이 깊은 성찰의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