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중재하려던 기존의 적극적 행보에서 한발 물러섰다. 그는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이후, 두 당사국이 직접 협상에 나설 것을 권고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무조건적인 30일간의 휴전을 요구하며 러시아를 압박했으나, 이제는 협상의 전권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넘기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2시간 넘게 통화하며 휴전 협상의 가능성을 논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30일 휴전 요구를 거절했으며, 대신 "미래 평화 협정에 대한 각서를 고려할 수 있다"며 직접 협상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우크라이나 측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며 중재자 없는 양자 협상을 선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후 발표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직접 협상에 동의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협정 조건은 당사국 간 협상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 협상 세부 사항은 제3자가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 중재자에서 한 발 물러서, 두 나라에 협상의 주도권을 넘기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 전환은 지난주까지의 기조와는 상반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열흘 전만 해도 무조건적인 30일 휴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러시아에 대해 추가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의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국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제재 법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특히 16일에는 튀르키예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3년 만의 직접 회담이 재개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지지하며 "푸틴이 협상장에 나온다면, 나도 직접 중재자로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통화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중재 역할을 교황청에 넘기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교황청이 협상 중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바티칸에서 논의가 열리면 좋겠다. 상징적인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늦게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물러서겠다"며 중재에서 손을 떼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대러 제재 추가 여부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그런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면서도 "지금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당장 고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입장 전환은 사실상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단이 부족해졌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추가 제재를 카드로 내세웠지만, 전임 바이든 행정부 시절 이미 러시아에 대해 고강도 제재가 다수 부과된 상태다. 따라서 현실적인 제재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 또한 변수로 작용한다. 러시아 원유를 수입하는 인도와 중국 기업에 대한 2차 제재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이러한 조치가 양국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중국과는 최근 무역전쟁 휴전에 돌입한 상태로,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려는 분위기도 있다. 

제재를 완화해 러시아로부터 양보를 이끌어내는 이른바 '당근 전략'도 현실성은 낮다. 유럽 동맹국들의 반발이 우려되며, 그들의 동참 없이는 제재 효과 자체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된 '신고립주의' 노선이 제재 부과와 배치된다. 그는 국제 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줄이겠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으며, 강력한 제재는 되레 미국이 사태에 더 깊이 관여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전략이 오히려 미국의 국제적 입지를 약화시켰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차지하던 주도권도 함께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CNN은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이 더 이상 자신의 인정을 구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은 힘의 한계를 인정하고 1940년대 이후 가장 중요한 평화 협정을 바티칸에 넘겼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