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아라비아를 택하고, 이 자리에서 총 6,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중동에서의 미국과 중국 간 영향력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5일 분석했다. 

이번 발표는 특히 무기 판매, 인공지능, 에너지 협력,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 2기 이후 미국이 중동에 대한 전략적 개입을 더욱 강화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상하이 국제학대학 중동연구소의 판홍다 교수는 "이번 협력은 양국 관계의 규모와 범위 모두에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걸프 국가들과의 관계가 더욱 강화될 것이고, 이에 따라 미국의 중동 내 영향력도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국영방송 알에크바리에도 따르면, 트럼프가 사우디에 제안한 이번 협정의 규모는 2022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우디 방문 당시 발표된 약 300억 달러 수준의 거래를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이번에 체결된 협약은 1,420억 달러 규모의 방위 산업 협력을 포함해 향후 4년간 점진적으로 이행될 계획이다. 

하지만 분석가들은 이번 미국의 거액 투자 약속이 반드시 실질적인 이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사우디를 포함한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은 오랫동안 중국과 광범위한 경제 협력을 진행해온 만큼, 단순한 금액 규모만으로 양국 간 전략적 관계의 변화를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미국 내 중동 전문가 제시 마크스는 "이번 트럼프의 방문은 GCC가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신호"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중국과의 협력을 줄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여전히 중동 최대의 원유 수입국으로서 경제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중국은 이란, 이스라엘, GCC 국가들로부터 1,860억 달러 규모의 원유를 수입했으며, 기계 및 부품 등 공산품 수출은 1,380억 달러를 돌파했다. 판 교수는 "중국은 거래 가격과 범위, 협력의 깊이 면에서 여전히 강점을 갖고 있으며, 미국은 아직 중국의 제조 역량이나 전문성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동 전략에 정통한 스웨덴 일대일로 연구소 후세인 아스카리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그는 "걸프 국가들이 집단 자살을 하지 않는 한 중국과의 산업 협력을 중단할 수는 없다"며 "특히 인프라와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 중국은 필수적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사우디와 UAE를 포함한 걸프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꾀하며, 양국과의 협력에 모두 문을 열어두는 다원적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스카리는 "사우디와 아랍 국가들을 마치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미성년자처럼 여기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며 "과거에는 미국 의존도가 컸지만, 지금은 각국이 자율성과 주권을 중시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판 교수 또한 "걸프 지역에서 전략적 자율성과 외교적 다원주의를 추구하는 흐름이 확립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투자 발표에 포함된 주요 기업 중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술 기업인 엔비디아(NVIDIA), AMD, 구글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은 양국 간 협력 이니셔티브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사우디 국영기업인 휴메인은 구체적인 액수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미국 측에 별도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중국의 기술 기업들 또한 중동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화웨이 테크놀로지스는 사우디 내 스마트 시티 건설과 5G 네트워크 구축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는 서방이 중국 기술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2023년 UAE 대통령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도 중국을 직접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하이테크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국은 걸프 지역의 인공지능 및 반도체 기업들에게 중국과의 기술 협력을 줄이도록 압박해왔다. 2022년에는 미국의 기술 수출 제한 조치로 인해 UAE가 참여하려던 중국의 달 탐사 프로젝트가 무산되기도 했다. 

마크스는 "사우디가 민감한 기술에 대해 미국으로부터만 조달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하는 한, 일부 분야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이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마이크로칩과 방위 관련 물자를 언급하며, "이러한 장벽은 사실상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미국 아메리칸대의 존 칼라브레세 교수는 "미국과 중국 간의 중동 내 경쟁은 반드시 제로섬 게임은 아니다"라며 "두 나라는 에너지와 방위 같은 특정 분야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