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는 종교교회 故 최현식·전상례 장로
할아버지인 故 최용한 씨도 신앙인 가정
'이모할머니'는 중앙대 설립자 임영신 씨
국무총리직에서 사임하고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한덕수 전 총리의 부인 최아영 여사가 4대째 기독교 신앙을 이어왔고, 한 전 총리도 기독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일각의 '무속 프레임'과는 상반된 것이다.
최 여사의 증조할아버지는 일제 당시 김제 죽동교회 등 다수 교회를 설립한 故 최학삼 목사였고, 할아버지인 故 최용한 씨는 삼례교회 임구환 장로의 딸인 임선유 씨와 결혼했다. 아버지는 죽동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후 1978년 종교교회 장로로 취임한 故 최현식 장로다.
특히 최학삼 목사는 1908년 일진회에 대항하기 위해 세운 김제 대창교회 1대 장로였다. 이 교회는 제2대 부통령 함태영 목사와 6.25 전쟁 당시 순교한 안덕윤·안경훈 목사 등을 배출했다.
최학삼 목사는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된 뒤 1920년 김제 죽동교회를 세웠고, 명량·남포·선유도교회를 건립해 시무하기도 하는 등, 초기 한국교회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된다.
친일파로 알려진 이완용과 2년간의 법정 소송에서 이긴 일화도 있다. 이완용이 자기 소유지에 물을 대기 위해 마을하천을 보로 막아버리자, 최학삼 목사는 동네 사람들의 논에 물을 댈 수 있도록 교회 청년들과 함께 새벽예배를 마친 후 보를 허물어버렸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최학삼 목사는 이완용과 법정 대결까지 벌였고, 끝내 승소를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에도 일제의 거듭된 수탈로 교우들도, 교회도 긴 세월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최학삼 목사의 아들이자 여사의 할아버지인 최용한 씨도 삼례교회 임구환 장로의 딸인 임선유 씨와 결혼하며 신앙인 가정을 이뤘다. 최 씨의 부인 임선유 씨의 언니, 즉 여사의 이모할머니인 임영신 씨도 기독교인으로 중앙대학교를 설립했다. 특히 임 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건국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최학삼 목사의 손자로 여사의 친부인 최현식 장로는 김제 죽동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후 1978년 종교교회 장로로 취임했다. 그가 신흥건설 사장으로 있을 때인 1973년, '노아의 방주' 모양인 죽동교회 예배당 건축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 장로는 종교교회에서 교육위원장, 성가대장, 관리부장, 수양관운영위원장, 재무부장 등으로 활동하다 1990년 은퇴했다. 1900년 4월 15일 설립된 종교교회는 국내 감리교회의 '모교회'로 불리는 유서 깊은 교회다.
최 장로의 부인이자 여사의 어머니인 故 전상례 씨는 1992년 남편이 죽은 뒤 장로직을 승계하고 장학금 1천만 원을 봉헌했다. 그녀는 1946년 진안장로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뒤, 흑석동 감리교회 집사, 그리고 종교교회에서 권사, 여선교회 회장, 장로를 거쳐 도렴동 새성전 건축위원회에서 회계를 맡았다. 1998년 장로로 은퇴했다.
종교교회 역사를 기록한 '종교교회사'는 "1992년 9월 23일 최현식 장로가 은퇴한 지 4개월 만에 별세했다. 그의 죽음은 남편의 장로직을 계승했던 전상례 장로를 비롯한 가족은 물론, 종교교회 교인들에게 슬픔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덕수 전 총리 부부의 기독교 신앙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최아영 여사에 대한 정치권 일각의 소위 '무속 프레임'에 대해 "터무니없는 것"이라며 "최 여사는 물론이고 여사의 선친들과 그 주변 인물들이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들이다. 무속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일축했다.
한편, 한덕수 전 총리는 얼마 전 부활절 때 명성교회(담임 김하나 목사)를 찾아 예배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