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메릴랜드주 몽고메리 카운티 교육구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성소수자(LGBTQ) 관련 도서를 교육 과정에 포함시키면서 일부 학부모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자녀의 수업에서 해당 내용을 제외해달라는 학부모들의 요청이 거부되자, 무슬림과 기독교를 포함한 다양한 종교적 배경의 학부모들이 연방 대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교육 선택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교육 선택권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주장
무슬림 학부모 와엘 엘코샤이리는 지난해 자신의 딸을 몽고메리 카운티 공립학교에서 자퇴시킨 인물로, 교육 당국이 학부모의 권리를 약화시키고 자녀들에게 특정한 이념을 주입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23일 대법원에서 열린 'Mahmoud v. Taylor' 사건의 구두변론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자녀들에게 결혼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신성한 결합임을 가르친다. 이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엘코샤이리는 자신이 성소수자 공동체를 혐오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다원주의 사회 안에서는 서로의 신념을 존중하고 충돌이 발생할 경우 교육적 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학교에서 이슬람에 대한 수업이 진행되고 성소수자 학생이 이를 거부한다면, 나 또한 그들의 선택권을 지지할 것"이라 밝혔다.
◈문제의 도서와 논란의 배경
해당 교육 정책은 2022년부터 시행됐으며,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성소수자 주제를 다룬 다양한 도서들이 수업에 포함됐다. 이들 도서에는 성전환 아동의 이야기를 담은 『Born Ready: The True Story of a Boy Named Penelope』와 자긍심 퍼레이드를 소개하는 『Pride Puppy』가 포함되며, 일부 책에서는 속옷, 가죽, 드랙퀸 이미지를 찾는 활동이 수록되어 있어 논란을 빚었다.
초기에는 학부모들이 자녀를 해당 수업에서 제외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으나, 이후 이 권한이 철회되면서 갈등이 심화됐다. 엘코샤이리는 "이 문제는 대법원까지 갈 성질의 것이 아니며, 학부모들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며, 교육 당국이 "이념을 억지로 주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독교 학부모의 입장
이날 시위에 참여한 또 다른 학부모 빌리 모게스는 기독교인으로, 교육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비영리단체 '키즈퍼스트(KidsFirst)'의 디렉터이다. 그녀는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한 교육은 아직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게스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가르치며, 감정에 따라 성별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은 아이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가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교육받는 것은 중요하지만, 우리 자녀들이 그 대가를 치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법원 내 논쟁
대법원 구두변론에서는 진보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LGBT 콘텐츠에 노출되는 것이 강요(coercion)는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교육구 측의 입장을 지지했다. 케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역시 "내용에 반대하는 학부모는 다른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학부모 측이 승소할 경우, 향후 모든 커리큘럼에 대해 수업 제외 요청이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새뮤얼 얼리토,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교육구가 왜 성소수자 관련 자료에 대해서만 수업 제외를 허용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배럿 대법관은 해당 교육 자료가 단순히 성소수자의 존재를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한 세계관을 정답으로 제시한다고 지적하며 "이건 '2+2는 4다'고 가르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맞불 시위와 사회적 여론
대법원 앞 시위 현장에서는 성소수자 권리 지지자들도 맞불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무지개 깃발을 활용한 복장을 하고, "모든 가족은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의 사랑은 더 크다"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집회에 나섰다. 그러나 이들 시위대는 언론 인터뷰 요청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