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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살며,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사람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이라는 통념은 널리 퍼져 있다. 이 같은 믿음은 깨끗한 환경, 영양가 높은 음식, 그리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 접근 가능성이라는 조건에 근거해 형성됐다. 그러나 단순히 물질적 조건만으로 건강의 격차를 설명할 수 있을까? 

공공보건학자 알린 제로니머스는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에서 이러한 질문에 정면으로 응답한다. 그는 "웨더링(weathering)"이라는 개념을 통해,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이 인간의 몸에 얼마나 깊이 새겨지는지를 생리학적으로 설명한다. 

웨더링은 원래 '풍화'나 '침식'을 뜻하는 지질학 용어이지만, 제로니머스는 이 개념을 인종, 종교, 민족 등의 사회적 차별과 그로 인한 반복적인 스트레스가 신체에 주는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영향을 뜻하는 개념으로 확장해 사용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억압과 차별이 심리적 고통을 넘어 실제적인 건강의 침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억압과 생존을 위한 노력, 즉 스스로를 갈아넣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만성 스트레스가 몸에 직접적인 손상을 준다고 설명한다. 이는 단순한 감정이나 정신건강 문제로 국한되지 않고,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같은 만성질환의 유병률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제로니머스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사례를 들어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팬데믹이 발생하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유색인종, 노동계급, 사회적 소외계층이었다. 그들이 바이러스 앞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기 어려운 노동 환경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수백 년에 걸쳐 몸에 쌓여온 차별과 억압, 스트레스가 건강을 취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책 속에서는 이렇게 기술된다. "2020년 봄에서 살아남은 사람은(살아남지 못한 사람이 많다) 누구나 수백 년간 너무나 많은 미국인이 익숙해졌고 권력을 쥔 자들이 외면한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 그리고 그렇게 일찍 죽는 사람들 중에 유색인종, 노동계급, 소외집단 구성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제로니머스는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단순히 '자신의 건강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접근에서 벗어나, 건강을 구성하는 사회적 토대와 구조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공중보건 정책 역시 더 이상 '행동 교정'만을 중심으로 해서는 안 되며, 사회적 구조 개혁과 차별 해소가 병행되어야 진정한 건강 형평성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건강 불평등의 실체를 보여주며, 공공정책과 사회 구조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차별과 억압이 개인의 생명을 조금씩 침식해가는 웨더링의 과정은, 결국 사회 전체의 책임임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