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지난 2주간에 이어 LG 유플러스tv에서 제작한 드라마 <선의의 경쟁>을 분석합니다. 웹툰 기반의 이 드라마는 입시 경쟁이 벌어지는 상위 1% 채화여고에 전학온 '슬기'에게 각자의 욕망을 드러내는 친구들, 그리고 수능 출제 위원이었던 아버지의 의문사를 둘러싼 '미스터리 걸 스릴러'입니다. 혜리, 정수빈, 강혜원, 오우리, 김태훈, 갓세븐 영재 등의 배우가 출연합니다. -편집자 주
소돔과 고모라 멸망 이른 원인
종교성 부족 아니라 성적 타락
복음화 진행 결과 성도의 견인
기독교 교육 사회 전체에 효력
복음 바깥에서 도덕성 붕괴 시
복음화 자체 막혀 교육도 안돼
한국 교육체계와 기독교 교육 연구의 약점
드라마 <선의의 경쟁>은 왜곡된 양적 공리주의의 망령을 떨치지 못한 한국 공교육 체계의 참담한 인성교육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에 묘사된 학부모들의 학대에 가까운 학습 강요나 성적과 진학을 둘러싼 학생들 사이 과열된 경쟁 및 비열한 주도권 다툼은 여러 모로 심하게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도덕성과 사회성을 잠식하는 이런 비인간적 행태는 실제 공교육 현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현재 한국 교육 체계는 드라마보다 조금 순화된 방식이기는 해도, 분명 학생들의 도덕성과 사회성을 나날이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북미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처음 근대 교육체계가 정립된 한국에서 이처럼 인성교육이 붕괴되어 버린 이유는 일제 황민화 교육의 영향과 잔재 때문이다. 교육 현장에서 성경과 신앙의 교육기회가 사라지고 오로지 세속적 배금주의와 물신숭배가 학생 개개인의 지고선이 되어버린 까닭에, 현재 자라나는 세대는 학교나 학원에서 도덕 실천에 필요한 자유의지 행사의 훈련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더 안타까운 일은 한국 기독교계나 신학 연구자들도 우리 사회 청소년들의 인성교육에 있어 유효한 대안을 잘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한국 교계 복음주의 신학의 중추를 이루는 한국 개혁주의 신학의 역사적 약점이 반영돼 있다.
한국은 유럽과 북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독교 역사가 매우 짧다. 따라서 우리 교육 현실 또한 과거 유럽이나 미국의 목회자, 신학 연구자들이 마주하던 것과는 그 양태나 성격이 크게 다르다.
서구 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십수 세기에 걸친 장구한 기독교 역사를 배경 삼는 교육환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교육에 관한 방침을 세울 때 항상 어려서부터 기독교적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어린 세대를 가르치는 일을 염두에 두었다.
반면 한국의 교육환경은 유럽이나 미국만큼 기독교적 삶의 방식이 익숙한 환경이 아니다. 한때 한국에 기독교 인구가 천만이 넘는 시절도 있었지만, 그 중 대다수 신자들 삶의 방식이 기독교적으로 온전하게 성화되지는 못했다.
한국의 정신문화는 기본적으로 유교, 불교, 그리고 무속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가운데 교육 문화는 인(仁)의 함양과 예(禮)의 실천에 중점을 둔 유교 전통에 지배적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일제시대 황민화 교육 영향으로 유교적 인성교육 전통이 붕괴되다시피 하고 그 자리에 패권주의와 적자생존 논리가 들어오면서, 우리 교육 체계에서 도덕성과 사회성 함양 기능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즉 일제 문화 통치가 시작된 이래 한국 교육체계는 유교적 인성교육 전통도, 기독교적 인성교육 전통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선의의 경쟁>의 교회 예배 장면. 한국 복음주의 학계의 기독교 교육 연구는 이러한 조기교육의 '인간학적' 필요성보다는 신앙의 양심이 '은혜를 통해' 함양되는 방안의 논의에 천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 공교육과 기독교 교육에서 조기 인성교육의 '인간학적' 필요성
그러므로 한국 공교육 체계가 내포한 도덕과 양심의 공백 문제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인성교육 여건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 교육환경을 상대하는 서구 연구자들의 대안을 직접 대입한다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덕과 양심을 지키는 자유의지 훈련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한국 교육 체계 역량은 제로베이스에 가깝다.
우리 교육 체계의 인성교육 결여에 대한 고민은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어린아이 시절부터 선행학습과 경쟁우위 확보 목적의 지식주입 '산업' 양성을 그치고 이타심, 배려심, 그리고 도덕적 양심의 실천능력 함양에 목표를 둔 유소년 교육 체계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이 한창 지식 및 기술 습득에 전념해야 하는 청소년기를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
결국 인성교육 핵심은 도덕실천에 필요한 자유의지 조기교육이다. 그렇지만 한국 복음주의 학계 기독교 교육 연구는 이러한 조기교육의 '인간학적' 필요성보다는 신앙 양심이 '은혜를 통해' 함양되는 방안의 논의에 천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기서 '은혜를 통해서'란 인간의 자주적인 노력과 훈련보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따른 견인의 역사에 의한 도덕성과 양심의 함양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 총신대 유아교육 연구자 정희정 교수의 최신 연구 '개혁주의 인간론에 기초한 유아기 습관형성교육의 정당성과 의미 고찰'(2024)과 장신대 기독교교육학 연구자 김희영 교수의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에게 나타난 은혜와 의지를 통해 본 기독교 성품교육 방향'(2024)을 대표적 사례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연구에 담긴 교육학적 통찰은 탁월하다. 특히 선의지를 비약적으로 강화하는 기독교 신앙의 도덕적·교육학적 효력에 기댄 유소년과 청소년 교육의 길을 제시한 점에 대해 신학 연구자 입장에서 별다른 이견을 표명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신앙을 통한 심성 변화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인성교육 방안에 대한 고찰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작중 유제이(이혜리 분)가 '도덕적 일탈을 통해 하나님과 유의미한 교제를 한다는' 어긋난 심성을 갖게 된 것도 그 아버지 유태준(김태훈 분)의 교육방침이 순전히 지식습득 경쟁에서의 승리를 인생의 최고가치로 두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경향은 여타 한국 기독교 교육 연구자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는 약점이다. 한마디로 기독교 교육의 외연 확장 노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공교육 현장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바로 성도의 견인 역사가 미치지 못하는 유소년 및 청소년에 대한 인성교육 방안이다.
도덕적 퇴락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복음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회 구성원들이 숭고한 도덕법칙을 지키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아, 이기적 욕망과 말초적 쾌락 충족에 쉽게 빠져들기 때문이다. 성경의 예를 들자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에 이르게 된 원인 역시 종교성 부족이 아니라 성적 타락이 극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복음화가 진행되어야 성도의 견인을 체험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그로부터 기독교 교육의 힘이 사회 전체에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기독교 교육의 선교적 이치다. 그런데 복음 바깥에 있는 이방인 단계에서 이미 도덕성 교육이 붕괴된 상황에서는 복음화 자체가 가로막히므로 그 다음 단계인 기독교 교육의 효력 역시 무산된다.
따라서 현재 우리 기독교 교육 연구와 실천에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신앙 공동체 바깥의 유소년·청소년들에게까지 실질적인 도덕성 교육, 양심 함양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과 역량이다.
드라마 <선의의 경쟁>의 두 주인공 중 하나, 유제이(이혜리 분)가 '도덕적 일탈을 통해 하나님과 유의미한 교제를 한다는' 어긋난 심성을 갖게 된 것도 그 아버지 유태준(김태훈 분)의 교육 방침이 순전히 지식 습득 경쟁에서의 승리를 인생의 최고가치로 두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도덕적 명령 준수의'인간적' 혹은 '인간학적' 노력과 준비는 신앙을 통해 완성되는 보다 고차원적인 덕, 아퀴나스가 명명한 '신학적 덕(theological virtues)', 즉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을 갖추기 위한 필수 예비단계다.
어려서부터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기초적 선의지 교육과 훈련을 전혀 받지 못한 채 단지 교회 출석만으로 성화된 신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비합리적인 생각이 작중 유제이의 심성을 망가뜨려 놓았다. 이는 신앙 교육에서 인간의 선의지 훈련과 계발이 하나님의 은혜만큼이나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믿음과 도덕 양면에서 완성된 인간을 길러내기 위한 기독교 교육은 성경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본 토대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그 완성으로 가는 중간 과정에서 현실적 삶의 정황에 갇혀 있는 유한한 인간은 우선 보편적 선과 악을 분별하는 기초 훈련을 받고 스스로 도덕적 명령을 지켜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인간적' 혹은 '인간학적' 노력과 준비는 신앙을 통해 완성되는 보다 고차원적인 덕, 아퀴나스가 명명한 '신학적 덕(theological virtues)', 즉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을 갖추기 위한 필수 예비단계다. 기독교 교육 연구자들과 공교육 담당자들이 이 예비 단계의 중요성을 알고 현재의 그릇된 교육 체계를 변화해 나가기를 바란다.
▲박욱주 교수.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 좁은문은혜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면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