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욱주 교수님의 이번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돼 화제를 모은 8부작 SF 시리즈 <삼체>에 대해 지난 편에 이어 분석합니다. 이 시리즈는 데이비드 베니오프, D.B. 와이스, 알렉산더 우 등의 연출로 조반 아데포(사울 듀랜드), 존 브래들리(잭 루니), 로절런드 챠오(닥터예), 리암 커닝햄(토머스 웨이드), 에이사 곤잘레스(오기 살라사르), 제스 홍(진 청), 말로 켈리(타티아나), 알렉스 샤프(윌 다우닝), 시 시무카(지자), 진 쳉(예원제) 등이 출연합니다. -편집자 주 

종교 해체하는 외계인 중심 세계관
대중문화, SF에 영향력 과도 부여
검증 안 된 믿음, 진리로 탈바꿈해
과도하게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관

 ◈자연과학과 종교적 보상: 종교의 보상에 대한 '설명'들

자연과학은 세계의 진리를 어느 정도까지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가? 자연과학이 보여주는 세계의 진리는 여러 종교들이 해명하는 바와 얼마만큼 다른가? 그리고 둘 중 어느 쪽에 더 큰 신빙성이 있는가? 소설과 TV 시리즈 <삼체>는 자연과학의 진리 해명 가능성과 종교적 세계관 사이 긴장과 갈등에 관한 이 오래된 물음을 재차 상기시킨다.

<삼체> 서사 안에서 이 물음은 안타고니스트인 알파 센터우리 외계인들과 이 외계인을 추종하는 사이비 종교집단 교주 예원제를 통해 구체화된다. 예원제는 문화대혁명이 그녀의 가정을 파괴했던 잔혹한 기억, 이후로도 끊임없이 중국 공산당이 그녀에게 자행한 폭력과 인권유린 경험 때문에 인류와 인류문명 자체에 대해 적개심을 갖는다. 

여기에 더해 중국 정치와 사회 분위기의 처참한 비과학성을 확인하고 극단적 냉소의 감정을 품게 된 예원제는 인류보다 과학적으로 몇십 단계는 앞서 있는 알파 센터우리 외계인이야말로 지구의 비루한 문명을 완벽하게 전복하고 다스릴 일종의 '구원자'라고 인지하게 된다.

이 외계인들은 인류가 숭배하는 전형적 형태의 신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 세계의 가혹한 천체환경 때문에 반복된 문명 파괴를 겪어 왔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지 못했기에 안정적으로 문명의 개척과 발전이 가능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우주를 떠돈다.

이처럼 알파 센터우리 외계인들은 전지전능한 신과 거리가 먼 이들이지만, 예원제 입장에서는 인류 문명의 비인간성과 기술적 미개함을 심판할 수 있는 힘을 가졌기에 신으로 섬겨도 될만큼 위대한 존재로 비춰진다.

<삼체>의 사이비 종교단체에 관한 설정은 여러 종교사회학자들이 내놓는 종교의 기원에 대한 설명에 부합한다. 일례로 미국 종교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와 윌리엄 심스 베인브릿지는 비용, 보상, 그리고 합리적 선택 개념을 중심으로 원시 인류에서 종교가 발생한 논리를 따진다. 두 사람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어떤 행동을 선택함에 있어 들어가는 비용보다 더 큰 보상을 선사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려 힘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종교는 자연적 조건으로는 얻을 수 없는 초월적 보상(대표적으로 죽음의 극복)을 얻기 위해 비용(믿음과 헌신)을 투입하는 행위이다. 이때 종교를 주로 떠받치는 것은 초월적 보상에 대한 각 종교의 '설명'이다.

이 보상을 수여하는 초월자(신)에 대해, 이 초월자와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초월적 보상의 내용에 대해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종교만이 각 집단에 받아들여진다.

<삼체>는 여러 원시종교들이 그랬듯 나름 초월자와 초월적 보상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내놓는다. 물론 이 설명은 원작소설 <삼체>의 저자 류츠신의 공산주의적 세계관을 반영한 까닭에 유믈론적이고 과학주의적이다.

작중 예원제는 그녀가 증오하는 인류에 대한 심판이라는 초월적 보상을 얻기 위해 인생 전체를 바쳐 알파 센터우리 외계인들의 침략을 예비한다. 예원제가 바라 마지않는 초월적 보상은 모두 외계인들이 지닌 과학문명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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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에서 예원제가 바라 마지않는 초월적 보상은 모두 외계인들이 지닌 과학문명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자연과학과 종교적 진리: 초월자에 대한 자연과학적 설명, 외계인

류츠신은 작중 예원제와 그녀의 추종자들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종교적 믿음이라는 것이 실은 자연과학으로 충분히 파헤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한다.

그리고 이는 근래 제작되는 여러 SF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견해이기도 하다. 이러한 견해는 종교의 신비 속에 담긴 허실이 자연과학 앞에서 결국 낱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과학주의적 신념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이런 신념을 받드는 가장 가까운 예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기독교가 설명하는 초월적 창조주가 실은 인류보다 월등한 과학기술 문명을 건설한 외계인들이라는 설명을 제시한다.

이 외계인들은 인류보다 수십 단계는 더 발전된 생명공학 기술로 자신들과 닮은 꼴 유전자를 지닌 생물 종(인간)을 창조하고 이 종의 번성을 관리했다.

외계인들은 원시 인류에게 자주 모습을 드러내 그들의 기술적인 힘을 보여주었다. 아직 자연과학 발전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원시 인류의 눈으로 보기에 이 외계인들이 사용한 기술의 힘이 그야말로 신비롭고 초월적인 권능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수천 년이 지나 외계인들의 과학기술 발전을 어느 정도 따라잡은 인류는 이 외계인들이 무한한 권능을 지닌 초월자가 아니라 그저 인류보다 앞선 문명을 건설한 이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것이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제시하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자연과학적 설명이다. <프로메테우스> 스콧 감독이 인류의 기원에 대해 자연과학적인 설명을 시도한다면, <삼체>의 류츠신은 인류의 종말에 대해 자연과학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런 설명의 중심에는 모두 인류보다 월등하게 발전된 과학기술 문명을 건설한 외계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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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외계인 '엔지니어', 고도의 생명공학으로 인류를 창조한 이들로 소개된다.

이처럼 우월한 외계문명의 존재를 상정하는 관점으로 본다면, 결국 인류의 여러 종교들이 제시하는 초월적 보상이라는 것이 실은 존재하지 않거나, 혹여 존재하더라도 신비롭고 초월적인 방식으로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류가 진정으로 바라는 보상들, 즉 생명의 연장이나 사회적 정의나 삶의 안정 및 만족 등은 결국 인류가 자연과학 지식을 활용해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과학기술의 힘은 모든 종교적 설명의 신빙성을 해체하면서 인류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희망의 방편으로 옹립된다.

<삼체>나 <프로메테우스> 같은 작품들은 이런 생각을 잘 연출된 서사와 그럴듯한 과학적 설정들, 그리고 매혹적인 CG 장면들을 통해 믿을 만한 것으로 포장한다. 그렇지만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고도로 발전된 외계문명과 그런 문명을 개척한 외계인의 존재라는 것이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입증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외계문명을 찾으려는 SETI나 동류의 과학 프로젝트들은 천체물리학 발전에 큰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단 한 번도 외계인의 존재를 분명하게 입증한 적이 없다. 외계인 존재를 근거로 삼는 모든 과학적 설명도 실은 종교들의 설명 만큼이나 인간의 '믿음'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류츠신이나 스콧 감독은 SF 서사 즉 공상에 기반을 둔 픽션을 다루는 이들이다. 그들이 제시하는 세계의 진리에 대한 설명은 공상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 이미지, 그리고 시대정신을 적절히 활용하는 대중문화의 힘은 SF 서사에 종교적 믿음 수준의 사상적 영향력을 부여한다. 그래서 검증된 바 없는 믿음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혹은 진리가 될 가능성을 가진 설명인 것처럼 탈바꿈할 수 있다.

영화로 역사를 배우면, 결국에는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과도하게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관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영화를 통해 세계와 우주를 배우더라도 과도하게 왜곡되고 편향된 세계관을 갖게 될 수 있다.

<삼체>가 제시하는 세계와 종교에 대한 설명은 중국 공산당의 유물론적 종교관과 현대 서구의 무신론적 세계관을 이중으로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특히 기독교 신앙에 대한 멸시와 적대의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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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힘은 SF 서사에 종교적 믿음 수준의 사상적 영향력을 부여한다. 그래서 검증된 바 없는 믿음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혹은 진리가 될 가능성을 가진 설명인 것처럼 탈바꿈할 수 있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