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국 대중문화 약해진 틈타
국내 일본 대중문화 영향력 커져
줄거리 단순하나, 플롯은 복잡해
모국에 대한 혐오와 사랑 대치해
신토의 세계관, 매력적으로 담아
기독교 신앙 녹여낸 명작 언제쯤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 한국과 미국 대중문화 콘텐츠의 부진과 일본 콘텐츠의 부상 

올해 국내 극장가는 한국 영화의 흥행 부진이 지속되고, 디즈니 계열 영화들이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흥행력이 크게 떨어진 가운데, 일본 애니메이션의 관객동원력이 부각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월에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3월에는 <스즈메의 문단속>, 그리고 지난 두 주간 동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국내 일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함께 TV 애니메이션에 대한 국내 팬들의 관심도 제법 높은 편이다. 일본에서 2022년 방영돼 인기를 얻었던 <파티피플 공명>이 최근 국내 케이블 방송사에서 방영돼 호평을 받고 있고, 일본에서 2023년 4월부터 방영된 <최애의 아이>는 애니메이션과 함께 오프닝 곡 '아이돌'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돌'을 부른 일본의 인기가수 요아소비(YOASOBI)는 지난 9월 한국 한 대표 음악방송에서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 음악방송에 일본 가수가 직접 출연하는 일은 전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2018년 <프로듀스 48>이 제작되고, 국내 탑 걸그룹에 일본인 멤버들이 들어온 지 꽤 오래 되었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J-POP이 한국 대중에게 수용된 것이 아니라 일본 가수들이 한국 기획사의 아이돌 시스템에 편입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요아소비의 국내 음악방송 공연은 방송가에서 J-POP 콘텐츠를 직접 수입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현상이다. 그만큼 최근 한국 내에서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권 여당이 한미일 동맹을 중시하면서, 민간교류 또한 그에 발맞춰 확대되는 분위기다. 역대 최고 수준의 엔저 현상 또한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엔데믹과 맞물려 일본 관광 및 쇼핑 비용이 이전에 비해 크게 저렴해진 덕에 올 전반기 일본 관광객 수는 312만 명을 기록했다. 이는 일본 관광객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코로나 팬데믹 직전 2019년의 기록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다.

이처럼 여러 유리한 조건들이 겹쳐진 가운데,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의 한국 내 인지도와 인기도가 점점 더 커져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버블경제가 붕괴된 1990년대 이후 일본 대중문화는 세계화되지 못하고 갈라파고스화 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한국의 K-Culture는 2000년대와 2010년대 일본, 중국, 동남아 등지로 확산 노력을 거듭하면서 적어도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게다가 최근에는 북미 시장 진출도 활발해서 빌보드 순위 등에서 제법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일본 대중문화를 모방하기 바빴던 과거와 달리 한국 대중문화 산업도 무시하지 못할 성장세를 보여왔고, 현재는 일본 대중문화의 국제적 영향력을 잠식하고 위협하는 수준까지 발전된 것이다. 

방탄소년단 BTS
▲K-Culture를 대표하는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 ⓒ유니세프

하지만 K-콘텐츠의 이런 성장세도 어느덧 한계에 이른 징조들을 보이고 있다. 영화계는 독창성 없는 구태의연한 서사와 연출 공식에 따라 손익분기점에도 못 미치는 작품들만 양산하고 있고, 드라마 쪽은 넷플릭스 등 해외 거대 플랫폼 기업의 자본과 유통 능력에 힘입어 어느 정도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지만 그 인지도의 상당 부분은 국내 제작자들의 자체적인 역량에 기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K-POP 또한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이후 국제무대에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하는 팀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게다가 유소년 인구의 급속한 감소 때문에 아티스트 인재풀 또한 규모가 크게 줄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도 디즈니 쪽에서는 흥행력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올해 6월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이 국내 누적 극장관객수 720만 명을 동원하면서 꽤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었지만, 이는 작품 주인공이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라는 점에 기인한 특수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엘리멘탈>은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이나 여타 세계 시장에서 인상적인 흥행 성적을 내지 못했다. 제작비는 건졌지만, 마케팅 비용을 생각하면 소폭 적자를 낸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 양쪽 대중문화계의 극장 흥행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한국 대중문화계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축 가운데 하나인 일본 대중문화가 그 영향력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극장가에서 확인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 강세는 단기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과 미국 대중문화의 매력이 지금처럼 구조적으로 계속 약해진다면, 일본 애니메이션(혹은 어쩌면 일본 영화)의 국내 흥행력은 상대적으로 점차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점: 일본 고유의 종교성을 미화하는 환상의 힘

지난 두 주간 국내 일별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사실 대중성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당연하게도 국내에서 그리 높은 누적 관객수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11월 11일 기준 1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는데, 이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470만 명이나 <스즈메의 문단속>의 550만 명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지난 두 주 동안 국내 극장가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대항마인 한국과 미국 영화들의 흥행력이 크게 저하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자전적 서사를 담은 작품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1941년생으로 일본이 진주만 폭격을 시작하기 직전에 태어나, 태평양전쟁과 그 여파로 파괴되어 버린 일본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전쟁 당시 일본군 군용기 부품을 납품하는 공장을 운영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아버지의 일 때문에 어린 시절 군 출신 인사들에 둘러싸여 살았으며, 그들을 통해 일제가 주변국에 저지른 만행을 전해듣고 자국의 군국주의를 크게 혐오하게 되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태평양전쟁 시절 유소년기를 보내면서 모국의 군국주의를 혐오하게 된 일본의 거장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YTN 캡처

그리하여 젊은 시절에는 일본의 군국주의 파시즘에 대한 대안으로 좌익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기도 했으며, 애니메이터로 사회생활을 하던 중에도 꾸준히 반전주의 휴머니즘을 옹호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감독의 어린 시절 경험과 사상적 경향이 뚜렷하게 반영된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 11세 소년 마키 마히토는 태평양 전쟁이 한창인 1943년, 연합군의 공습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머니를 여읜 뒤 아버지와 함께 도시를 떠나 외가가 있는 우츠노미야시로 피난을 간다. 거기서 그는 요괴와 신비한 생물들이 가득한 이세계로 향하는 비밀의 문을 발견한다.

마히토는 그 이상한 세계로 자신의 이모가 납치된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그 안에서 갖가지 의미를 알 수 없는 고난과 사고에 휩싸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그녀와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이모를 구출해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서사를 풀어가는 실제적인 플롯 구성 방식은 이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준다. 기승전결이 명확하지 않고, 각 장면에 대한 배경이나 인과관계 설명도 부족하다.

주인공 마히토는 두서없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신비한 일들을 어렵사리, 주위의 도움을 받아 헤쳐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리운 어머니와 재회하고 가족을 구해내는 어려운 목표를 달성한다.

이 작품은 미야자키 감독이 모국 일본에 대해 혐오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대치시켜 서사의 갈등을 꾸려나간다. 어머니의 죽음, 공습 위협을 피해 낯선 시골로 피난을 간 것, 그리고 거기서 정신이 이상한 존재들(왜가리로 변신한 요괴나 말하는 펠리컨, 어리석은 앵무새 등)을 만나 고난을 겪게 되는 데서는 군국주의 일본의 전쟁범죄와 파쇼 전체주의에 대한 반감이 확인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등장하는 정신이 이상한 괴생물들은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미야자키 감독의 비판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반면 일본인들의 가족애, 자연에 대한 존중, 그리고 애니미즘(정령사상)에 대해서는 삶을 구원하는 힘이 있는 긍정적 요인이라고 보는 시각이 확인된다. 이는 작중 마히토가 가족 및 가솔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헤쳐나간다는 점, 그리고 이세계가 마히토에게 고난을 안겨주기는 하지만 동시에 가족을 구하고 정신적 성장을 이루게 해준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신토의 정령사상은 신들이 만물과 함께하기 때문에,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이 곧 신들의 세계와 연결돼 있다고 가르친다. 작중 이세계는 이런 신토의 세계관을 반영한, 현실성과 초월성이 뒤섞인 공간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작품에서 자연과 정령에 대한 일본인들의 숭앙 정서를 지극히 유려한 작화와 연출을 통해 미화하고 있다. 이것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같은 작품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바로 이 점에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특히 지브리 스튜디오의 강점이 두드러진다. 실화 영화로는 도저히 발휘하기 힘든 환상의 힘을 극도로 정제된 작화력과 연출력을 통해 발휘해, 일본인들이 삶과 세계를 대하는 데 있어 보이는 사상적 강점을 대단히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이교적 종교성을 이토록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문화적 역량은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운 측면도 있다.

기독교 신앙을 소개하기 위해 지브리 작품과 같은 수준의 완성도를 가진 애니메이션이나 영상 콘텐츠가 제작된 적이 있던가. 1998년 드림웍스가 제작한 <이집트 왕자> 이후로 그런 사례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계몽시대 이전까지 영상 콘텐츠가 없던 시절, 서구에서는 문학과 회화가 오늘날 영상 콘텐츠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다. 이 시기 최고의 문학, 최고의 회화작품은 대부분 기독교 신앙을 소개하기 위해 창작되었다.

당시보다 훨씬 더 세속화되고 고도화된 문명을 누리는 현재, 문화가 종교에 전적으로 봉사하던 과거 세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신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최고의 문화적 역량을 발휘하고 활용하던 정신은 오늘날 기독교계 또한 유지하고 계승할 필요가 있다. <계속>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기독교 신앙을 소개하기 위해 최고 수준의 작화력과 연출력을 발휘해 드림웍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