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2세 고달픈 삶 그려낸 드라마
정형화된 유교사상 악영향 보여줘
극복 과정 속, 한인교회 역할 조명
한국 정체성과 공동체성 유지시켜 

◈재미교포의 삶과 책임감: 동아시아계 이민자들과 그 자녀들의 불안한 정체성과 책임의식  

<성난 사람들>(Beef)은 미국 내 동아시아계 이민자 자녀들의 고달픈 삶을 그려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이다.

중년에 접어드는 한국·일본·중국계 미국인들이 혈연·친분·원한·치정 등으로 얽혀 좌충우돌하는 블랙코미디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 그리고 베트남-중국계 미국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앨리 웡이 주연을 맡았다.

드라마 줄거리는 30대 중반 한국인 재미교포 2세 대니 조(스티븐 연 분)와 비슷한 나이대의 중국계 미국인 에이미 라우(앨리 웡 분), 두 사람의 갈등이 핵심을 이룬다. 

별볼 일 없는 집수리 기술자 대니, 그리고 사업가로 성공을 거두었으나 남편·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에이미는 어느 날 쇼핑몰 주차장에서 서로 시비가 붙게 되고, 서로에게 위험한 보복운전을 감행한다.

그리고 이 사소한 감정 싸움이 격화되면서 두 사람의 삶과 가정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진다.

<성난 사람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인종적으로 미국 사회 소수 계층인 동아시아계 이민자 자녀들이 겪는 유교적·동아시아적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강박이 이들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가정생활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작품 내에서 두 주인공을 비롯한 동아시아계 미국인들을 괴롭히는 주범은 백인이나 흑인들에 의한 인종차별이 아니다. 정작 동아시아계 이민자 자손들을 고달프게 하는 주범은 그들에게 주입된 동아시아적 가치와 자화상이다.

대니는 가업을 이어받은 장남으로 막대한 책임감에 짓눌려 살고 있다. 이민 1세대인 부모님은 미국에서 모텔을 운영했으나, 불운한 일에 휘말려 모텔 소유권을 잃고 한국으로 돌아가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은 그나마 한국에서 사는 것에 큰 문제가 없지만 어려서부터 미국인으로 자라온 그는 부모님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성난 사람들
▲재미교포 2세로 미국에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니 조(스티븐 연 분).

그래서 대니는 동생 폴을 데리고 미국에서 집안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열악한 경제사정, 어설픈 집수리 기술, 그리고 형편없는 인맥 등으로 번번이 좌절을 맛보고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시비가 붙은 에이미에게 복수를 시도하다 우여곡절 끝에 한인교회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마지막으로 에이미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서로 깊은 대화를 통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낸다.

에이미 역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살아간다. 그녀는 저명한 예술가 아버지를 둔 일본계 미국인 남편과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가난을 떨쳐내기 위해, 그리고 사회적 신분을 얻기 위해 악착같이 사업에 몰두해 경제적 성공을 얻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예술적 위명에 눌려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남편의 마음을 잘 돌봐주지도 못할뿐더러, 딸에 대해서도 좋은 어머니가 되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남편은 자신의 갤러리에 고용된 백인 미녀 직원과 바람이 나기 직전인 상황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사업에서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서 고상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감 넘치는 모양새로 자신을 포장한다.

◈재미교포의 삶과 한인교회: 한인들의 안전망이자 심적 피난처인 한인교회

대니와 에이미 두 사람은 이처럼 자신에게 부여된 정형화된 책임을 잘 감당하지 못해, 마음 속에 커다란 짐을 떠안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삶을 이어간다. 이들이 지닌 책임은 동아시아 문화권 가정에서 각각 장남과 아내에게 맡겨진 전통적 형태로 고착화되어 있다. 이 책임은 그들의 가족에 의해, 그리고 그들의 자의식 자체에 의해 삶에 부여되어 지속적인 압박감을 준다.

대니가 이 압박감에 저항하고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한인교회이다. 대니 어머니는 그에게 한인교회에서 좋은 한국계 여성을 만나 결혼해 가정을 꾸리라고 여러 차례 그녀의 바람을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 대니에게는 그저 부담되는 일일 뿐이다.

그는 잘 풀리지 않는 사업에 대한 압박감, 그리고 에이미에 대해 깊어지는 원한 때문에 갈팡질팡하던 중 예전 한인교회를 같이 다녔던 베로니카를 만나게 되고, 그녀로부터 그녀가 현재 출석하고 있는 한인교회 전도지를 받는다. 그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교회 찬양집회에 참석한다. 

성난 사람들
▲한인교회 찬양집회에 참석해 울먹이는 대니

이 집회에서 그는 마음을 위로하는 찬양 선율과 가사에 눈물을 참지 못하고 설움을 토해낸다. 이후 교회에 열심히 참석하고 자원해서 교회 봉사도 하려고 한다. 여기서 대니의 마음은 반반으로 나뉜다. 그는 절반쯤은 교회에 진지하게 정착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 헌금을 자기 사업을 일으키는 데 활용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교회 예배당을 비롯해 건물과 시설 곳곳이 낡은 것을 보고 담임목회자에게 교회 수리를 제안한다. 교회에서 수리에 필요한 자재비를 제공하면, 대니가 인력 비용은 받지 않고 교회 시설 보수를 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목회자 입장에서는 마침 교회 시설 보수가 필요하고, 대니가 교회에 정착해서 무임으로 봉사한다는 말이 기꺼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제안에서 대니가 노린 것은 교회가 준 자재비는 자기 사업에 쓰고, 대신 자신이 아는 선배 교포가 훔친 자재를 사용해 교회 건물 수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의도는 불순하지만 어쨌든 대니는 교회 건물 보수를 무사히 마쳤고, 이후 교회 출석도 꾸준히 하면서 찬양팀 리더까지 맡아 교회 신자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교회로부터 받은 돈으로 사업도 궤도에 올라 부모님을 모실 새 집까지 번듯하게 건축하게 된다.

<성난 사람들>은 대니의 행적을 통해 한국인 이민자와 그 자녀들에게 한인교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상세히 조명하고 있다. 미국에서 한인교회는 이민자들 사이, 그리고 그 자녀들 사이의 확고한 인적 네트워크 구성의 근거지가 되어준다.

인종적으로 소수에 속하는 한인들에게 이런 네트워크는 곤란에 처했을 때나 위급할 때 삶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안전망이 되어주곤 한다. 또 젊은 교포들은 한인교회 내부에서 결혼 상대자를 찾는 경우가 많다.

한인교회는 이민자나 그 자녀가 느끼는 여러 정서적 압박감과 불안감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역할도 한다. 한인교회 예배는 이민자들과 교포들이 백인들과 흑인들로부터 받는 은근하거나 노골적인 차별, 이방인으로서 당하게 되는 여러 심적 어려움과 소외감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성난 사람들>은 한인교회가 가진 이 순기능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한인교회에 얽힌 부정적이고 불미스러운 면모들, 특히 작중 대니처럼 교회 내에서 금전적인 이익을 노리는 이들에 의해 발생하는 사건사고에 대해 다루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작품과 유사하게 미국에 이민을 간 한인 가족의 삶을 묘사한 <미나리>에서처럼 한인교회가 극단적으로 나쁘게 그려지지만은 않았다는 점에서, <성난 사람들>의 한인교회 묘사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근래에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한국과 미국 간 통신이 과거처럼 어렵지 않기 때문에, 한인교회가 미국 내 한인 이민자들과 교포들의 인적 네트워크에서 차지했던 지배적 위치를 점차 상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민자들과 교포들이 가진 한국계로서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유지하는 데는 여전히 한인교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성난 사람들
▲교회 봉사를 통해 교포 청년들과 친교를 회복하는 대니.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