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가 다음달 열릴 세계종교지도자회의에 불참을 통보했다고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가 보도했다. 이로써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만남은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정교회 고위 관계자는 지난 24일 러시아 국영통신(RIA)에 키릴 총대주교가 다음 달 카자흐스탄 수도 누르술탄에서 열릴 세계종교지도자회의에 불참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참석이 확정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의와는 별도로 키릴과의 만남을 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2016년 2월 12일 쿠바 수도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교황은 지난 6월 예루살렘에서 총대주교와 회담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교황청은 두 사람의 회동이 외교적 파장을 일으킬 것을 우려했다.
교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간의 화해 차원에서 모스크바에서 회동을 모색해왔다.
2021년 12월, 교황은 그리스 정교회의 수장인 이에로니모스 대주교를 만나 과거 정교회에 대한 가톨릭의 적개심에 대해 사과했다. 얼마 후 키릴의 외교 최고 보좌관이 로마를 방문해 구체적인 회의 날짜와 장소를 논의했다.
하지만 올해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됐다. 3월 16일 교황은 화상 키릴 총대주교와의 영상 통화에서 ‘성직자는 정치가 아닌 평화를 전해야 하고, 종교가 폭력적인 제국주의를 정당화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교황은 영상 통화에서 “옛적에 우리 교회에서도 성전(holy war)이나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말이 있었다”며 “오늘날에 우리는 그런 말을 해선 안 된다”며 일침을 가했다.
이후 교황은 5월 발간된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와의 인터뷰에서 총대주교의 전쟁 지지를 비판하며 “푸틴의 복사(alter boy)가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복사란 사제의 미사 집전을 돕는 어린 사람을 뜻한다.
키릴 총대주교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직을 남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금까지 그는 우크라이나를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며 전쟁을 옹호하는 설교를 해 물의를 빚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지난 6월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제6차 제재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키릴 총대주교에 대한 제재는 푸틴에 우호적인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요청으로 인해 무산됐다.
그러나 같은 달, 영국 외무부는 키릴 총대주교가 포함된 러시아 정치인, 국영 기업 및 단체에 대한 제제 명단을 발표했다. 리즈 트러스트 영국 외무장관은 당시 성명에서 제재 조치가 “강제 이주와 어린이 입양 등 우크라이나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온 푸틴의 전쟁 주범과 가해자들을 겨냥하고 있다”며 푸틴에 대한 압박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