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양적 성장 멈춰도, 질적 성장 강화될 가능성
1인 가구 청년들 신앙 공동체 내부로 맞이할 기회
가족 형태 및 구성원 변화, 복음적 대처 고민해야
◈가족과 전통: 유교적 가정윤리의 자연스러운 해체
영화 <런>은 미국 현실에 일반화된 한부모 가족의 비밀을 둘러싼 서사를 전하고 있다. 가족에 대한 한국의 전통적 정서와 사뭇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국내에서도 일반화될 가족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무엇보다 부모로부터 가해지는 일방적 구속과 가치 주입에서 ‘도망치라(run)’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최근 들어 많이 흐려지긴 했지만,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효(孝)의 가치를 떠받들고 장유유서의 질서를 중시해 왔다. 농경을 기반으로 한 씨족 중심의 대가족 형태가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었던 1950년대 이전에는 이러한 가치가 한국인들의 생존에 적합했다.
가정 내에 깊게 자리잡은 유교적 윤리지침에의 복속은 개개인이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이 되는 최소한의 자격요건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부모에 대해 불효한 이들, 그리고 연장자에게 무례한 이들은 가정 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지탄받고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에 놓이곤 했다.
노년의 부모를 봉양하는 일, 그리고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을 극도로 중시하던 전통 역시 이러한 유교적 가족윤리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책임은 한국 기독교 선교가 시작되던 시점부터 한국 가정 내부에 큰 긴장과 분란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었다.
부모 봉양의 책임을 저버리는 일은 성경에서도 지탄받아야 마땅한 일로 지목된다. 하지만 유교적 기준에서의 부모 봉양이란 거의 부모를 하나님 모시듯 하는 일이다. 자녀는 부모의 뜻을 자기 인생의 최대 목표로 받들고, 부모를 위해 삶을 헌신해야 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모든 기력과 시간을 부모를 공경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친다.
이는 부모가 살아있을 때만 아니라 부모의 죽음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제사와 명절 차례는 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 책임으로 여겨졌다.
이 두 가지 책임은 기독교 신앙과 크게 상충된다. 기독교에서 가족을 돌보는 임무는 중요하지만, 그 자체로 일생일대의 사명은 아니다. 가족을 돌아보는 일은 신앙의 범위 안에서, 하나님의 뜻과 그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범위 안에서 담당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부모의 육신 봉양보다 영혼 구령이 우선시된다.
제사에 대해서는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인들은 죽은 이의 영혼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사람이 망자에게 바치는 제물과 배례를 무의미한 것으로 여긴다.
부모 봉양 책임은 오늘날 평생 고용과 정년 개념이 무너지고 청년 실업과 자동화에 의해 일자리 감소가 일반화된 현실에서 경제적 이유 때문에라도 점점 비현실적인 윤리지침으로 간주되고 있다.
중장년, 노년 세대가 사회 자본과 부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에 허덕이는 청년층에게 노년층 부양 의무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이러한 추세는 현재 전 세계 제1위의 저출산 동향과 맞물려 갈수록 강화될 것이다.
제사를 중시하는 전통 역시 대가족 해체, 도시화로 인해 많이 희석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정 내부에서 가치 충돌을 겪게 만드는 주 원인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도 대략 한 세대가 지나면 상당 부분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족과 신앙: 가족 형태 변화와 신앙의 자유
한국은 이미 1990년대부터 한 자녀 가족이 지배적인 가족 형태를 차지해 왔다. 그 한 자녀들이 결혼과 출산 적령기에 진입하고 있는 현재, 한국의 청년층은 높은 생애미혼율(남성은 4명 중 1명, 여성은 6명 중 1명)과 이혼율을 보이고 있고, 합계 출산율 역시 0.8명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 채 앞으로 한 세대(약 30년)가 지나면, 국내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가까운 친척도 없이 노년의 부모와 미혼의 한 자녀만 남는, 그것도 자녀는 1인 가구로 따로 떨어져 사는 상황이 일반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 1인 가구 세대가 노년이 되어 사망하는 시기, 즉 배우자와 자녀 없이 죽을 때가 되면 부모 봉양이나 제사는 개념조차 소멸하고 말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얽매이는 관계, 특히 자녀들이 부모에게 수직적으로 귀속되는 관계는 갈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다. 대신 자녀와 부모가 서로의 자유의지와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수평적 관계가 강화될 것이다. 변화하는 사회적 생존 조건과 경제적 여건이 개개인에게 이러한 추세를 강요하고 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여기에는 각기 장단점이 존재한다. 부모와 자녀 간 수직적 관계의 약화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인격 간 질서를 교육시키는 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현실의 부모-자식 관계란 근본적으로 신-인 관계의 예표로서 자애와 양육, 그리고 공경과 순종이 어울리는 질서를 유비한다.
이런 질서를 어려서부터 몸소 체득하지 못한 이들은 정당한 권위에 대한 순복이라는 성품을 갖추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교육계의 인성교육 역량이 대단히 미흡한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는 이런 우려가 배증될 수밖에 없다.
반면 부모와 자녀 간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관계가 약화되고 수평적인 관계가 강화되면 될수록, 자라나는 세대가 신앙을 갖게 되는 경우 가족들의 관여 없이 자주적으로 순종과 헌신의 삶을 살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이 마련된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한국 복음화의 미래가 순전히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교회의 양적 성장은 멈추겠지만, 질적 성장은 강화될 수 있다. 물론 이는 한국교회가 내부에 안고 있는 숱한 부조리와 약점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만일 한국교회가 진정성 있는 신앙 갱신을 이룰 수 있다면, 향후 가족 해체의 현실에서 1인 가구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신앙 공동체 내부로 맞이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영화 <런>에 묘사된 부모-자녀 관계는, 물론 영화 설정상 거짓으로 꾸며진 모녀 관계이긴 하지만, 부모가 결코 자녀를 소유물 취급할 수 없는 미국의 사회적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향후 국내에서도 갈수록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된 자녀 학대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이런 추세를 입증하는 하나의 예시라 할 수 있다.
인간 현실은 유기적으로 변한다. 교회는 성경을 절대 불변의 진리로 믿지만, 그 적용에 있어 현실의 변화를 감안해야 할 과제 역시 짊어지고 있다.
한국교회는 가족의 형태와 가족 구성원 간 관계에 일어나는 거시적 변화를 어떻게 복음적으로 대처하고 신앙 갱신의 기회로 삼을지 고민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최근 미디어 콘텐츠 속에서 묘사되는 가족적 가치의 변화는 이러한 과제를 일깨워주는 하나의 계기로서 의미를 갖는 듯하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