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전염병: 중국과 한국의 우한 폐렴 대응 실패
19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주기적으로 발병하는 역병 때문에 많은 이들이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중세 말엽 몽고 제국을 통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부터 동서양 양방으로 전해진 흑사병은 말할 것도 없고, 천연두, 콜레라, 티푸스, 결핵 같은 전염병 역시 주기적인 대량 살상의 주범이었다.
전염병은 전시에 더 극성을 부렸다.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북군이나 남군 모두 군인들의 사망 원인 1위는 병영생활을 통해 확산된 전염병이었다. 전투 중 입은 자상, 총상, 포격에 의한 상처 등은 전염병에 비하면 약소한 수준의 사망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런 상황을 고민하던 미국 의사 리처드 개틀링은 세계 최초의 기관총(개틀링건)을 발명하기도 했다. 당시 기관총은 두어 명의 운영 인원만 있으면 1백여명의 보병을 대체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량 살상무기였다. 발명자 개틀링은 자신의 발명품으로 인해 전장에 동원되는 군인들의 숫자가 줄어, 더 이상 군인들이 전염병에 희생되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참호전 양상으로 진행됐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전염병은 여전히 군인들의 사망 원인 가운데 1순위까지는 아니더라도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폭탄(다이너마이트)과 기관총 등의 발달로 총격과 포격에 의한 사망자 수가 급증했지만, 전염병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위력을 가지고 병사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19-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전염병에 고통받던 사정은 동양 국가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14세기경 흑사병은 유럽에서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전체 인구의 약 30%를 멸절시켰다. 그 외에도 중국에서는 농민과 도시 하층민들의 영양 상태와 주거 환경이 급격히 나빠지는 기근 시기와 맞물려 돌림병이 대규모로 창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시 20세기 초반까지 티푸스나 콜레라, 천연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렀다. 실제로 당시 선교를 위해 입국한 미국 선교사들 중 스크랜턴 같은 이는 콜레라 창궐로 고통받는 한국인 수백여 명을 치료해 살린 기록이 남아있기도 하다.
이처럼 전통적으로 강력한 살상력을 발휘했던 대규모 전염병의 위세는 20세기에 들어서야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페니실린, 우두법, 바이러스 백신 등 다양한 치료약이 개발되는 한편, 대도시들에 분리 하수관이 설치되고 개인 위생 교육이 시행되면서 수천년 간 인류를 괴롭혀온 많은 전염병들이 약화되거나 사라지곤 했다.
오늘날 인류에게 남은 치명적 전염병은 변이 속도가 급격하고 변이 양상이 무궁무진한 일부 바이러스성 전염병과 면역계통 관련 전염병인 AIDS, 그리고 STD(성관계를 통해 전염되는 병, 즉 성병) 정도가 남아 있다.
현재로서 이 전염병들은 질병 관리를 담당하는 행정력만 면밀하게 작동한다면 충분히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질병들로 인식되고 있다.
바이러스성 전염병은 발병 초기 빠른 격리 및 치료제 양산 노력만 있다면 대규모 확산을 막을 수 있고, AIDS와 STD의 경우 남성 간 비위생적 동성애나 문란한 성관계 등을 방지하면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즉 오늘날에는 전염병 확산 사태가 벌어지면 대부분 불가항력적인 천재(天災)라기보다는 관리 부실로 인한 인재(人災)로 취급된다. 이번 우한 폐렴 사례가 대표적이다.
발병 초기 정확한 사태 파악과 정직한 행정 대응을 요청했던 의사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전염병 창궐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중국 공산당의 허세 가득했던 대응은, 현재 하루에만 수십에서 수백 명씩 사망자가 발생하는 재앙적 사태를 초래했다.
한국 정부는 중국 여행객의 전면 입국 금지를 통해 전염병 확산을 조기에 막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의 비위를 맞추기에 바쁜 현 정권의 성향에 따라 안일한 대처를 지속하다가, 국내에 우한 폐렴 확진자가 증가하는 불행한 사태를 자초했다.
현 정권이 우한 폐렴에 적극 대처한 유일한 사례가 있다면, 질병의 명칭을 '신종 코로나'로 변경한 것뿐이다. 이 역시 이번 전염병이 중국에서 발병한 사실을 불식시키기 위한 친중사대적 조치에 불과할 뿐, 실제 역병의 확산을 막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전염병 속의 교회: 중세 말 흑사병 창궐기의 교회
중국에 대한 굴종적 관계를 지속하려는 현 정권의 외교 방침 때문에, 우한 폐렴에 대한 한국의 초기 관리 및 대응은 신속하지도 않고, 근본적이지도 않았다.
결국 중국인들에 의한 전염병 확산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교회 공동체에도 전파되고 있다. 지난 주 명륜교회의 주일예배 무산 사태는 현 정권의 명백한 관리 부실로 인한 인재였다.
어느 시대든 간에, 전염병은 공동체의 회합과 하나 됨이라는 가치를 고수하는 교회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중세 말 흑사병 창궐기의 유럽 교회를 지목할 수 있다. 당시 유럽 인구의 1/3을 사망에 이르게 한 흑사병은 교회 공동체의 연대감과 개인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사료들을 찾아보면, 한 사람이 흑사병에 걸리는 경우 가족들이 전염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병자성사(병나음을 위한 성사)나 종부성사(임종을 맞이하는 이를 위한 성사)를 위해 방문한 가톨릭 사제들, 그리고 치료를 위해 방문한 의사들까지 전염돼 병마에 신음하며 죽어갔다.
이와 함께 유언과 유산 처리를 맡은 공증인, 그리고 시체의 처리를 맡은 장례인력마저 전염되어 죽는 절망적인 상황이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잠시라도 환자에게 접근하면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의사, 사제, 공증인, 장례인력 등이 흑사병 환자의 죽음을 돌보는 일을 거부했다. 당시 임종을 맞이하는 이들은 가톨릭 교리에 따라 종부성사를 통해 면죄를 받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방치된 채 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이런 상황은 일차적으로 교회 권위에 대한 불신을 낳았고, 이차적으로는 죽음 너머에 대한 신앙인들의 소망을 좌절시키는 문제를 낳았다. 원래 신자들에게 죽음이란 교회의 돌봄 하에 복된 내세로 건너가는 관문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흑사병 창궐과 함께 수많은 영혼들이 교회로부터 방치된 채 여기저기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내세에 대한 믿음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죽음이란 결국 고독하고 비참한 일이며, 하나님과 교회에 의해서도 극복될 수 없는 절망적인 끝이라는 인식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늘날은 어떨까? 질병과 죽음의 처리를 교회가 맡아야 했던 중세 시대와 달리, 현대에 질병의 방지와 치료는 질병 확산을 막아야 할 관리 책임을 지닌 정부, 치료를 담당해야 할 의료계, 그리고 스스로를 전염으로부터 지켜야 할 개인이 담당해야 할 몫으로 인식되고 있다.
즉 질병의 발생과 확산 책임이 교회에 전가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신자들에게는 여전히 교회가 전염병과 죽음의 위협을 극복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전염병에 의해 예배를 비롯한 신앙의 회합이 위협받는 상황은 교회들에게 여러 모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현재 안일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의 우한 폐렴 관리 방책에 휘둘리기보다, 교회들이 공동체를 전염병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 지켜내기 위해 적극적인 방어 행동을 취하는 태도가 필요한 상황으로 여겨진다.
특히 예배나 회합이 무산되는 일이 없도록, 교역자와 신자들이 필요한 행동 지침을 지키고, 각각의 몸에 이상은 없는지 서로 돌아보며 기도와 예방을 통해 전염병을 극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교회가 신자들의 영혼과 몸을 돌아보고 치유해야 할 사명을 위임 받았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일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교회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