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메일 '받은 편지함'에 반가운 편지 하나가 날아 들었다. 클락스톤 난민촌에서 희망의 꽃을 가꾸고 있는 시티호프커뮤니티(대표 김로리)의 4월 뉴스레터가 바로 그것이다. 두 달에 한번씩 오는 소식들 가운데 가장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바로 '어린이 교회'. 많은 사역들이 있지만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기대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조차 넘기 힘든 신분의 차이..자녀들 교회 보내기 꺼려
전 세계 각지에서 클락스톤으로 오는 난민들 가운데는 같은 나라에서 왔지만, 신분과 계급의 차이로 서로 말도 섞지 않는 민족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특히 부탄 난민들의 경우, 보통은 높은 계급 출신의 난민들이 낮은 계급 출신의 난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꺼리는데, 교회에서 조차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꾸준히 난민 교회 사역을 돕고, 방과후 학교 등으로 난민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시티호프 사역자들은 본인들은 가지 않더라도 자녀들은 교회에 보내고 싶어하는 부모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 '어린이 교회'를 난민 교회 목회자들에게 제안했을 때 그들은 오히려 "시티호프에서 직접 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해 왔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성도들을 돌보는 것조차 버거워 어린이까지 따로 돌보는 것도 힘들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차라리 신분제도에 관계 없는 제 3자가 나서게 되면 마음을 더 쉽게 열지 않겠냐는 예상이었다. 그들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열 두 명의 어린이들과 시작한 '어린이 교회' 지금은 130명 모여,아이들의 필요와 수준에 맞춘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
고향을 등졌지만 여전히 살아온 관습과 고정된 가치관에 매여 생면부지의 땅에서 조차 그 모습대로 벽을 쌓고 살아가는 부모들과 달리 열린 생각과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환경과 문화, 가치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18세 이하 자녀들을 위해 시작된 교회가 바로 '어린이 교회'다.
어린이 교회가 문을 열자 신분 차이로 일반 난민 교회에는 자녀들을 보내지 않던 부모들도 시티호프커뮤니티의 헌신적인 섬김과 사랑에 감동해, 흔쾌히 자녀들을 예배로 보내고 있으며 다른 교회 목회자들 역시 자신들이 전도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수고하는 시티호프 봉사자들을 보며 감사를 전하고, 도전을 받는다고 입을 모았다.
어린이 교회는 시티호프에서 사무실로 사용하는 아파트 거실에서 열 두 명의 어린이들과 예배를 시작한 뒤, 부탄 뿐 아니라 다른 인종들의 어린이들 까지 꾸준히 늘어나 예배장소를 옮기기 직전에는 60명의 어린이들이 출석해 발 디딜 틈 조차 없던 상황이었다. 현재는 인근 르호보스침례교회(Rehoboth Baptist Church: 2997 Lawrenceville Hwy Tucker GA 30084)의 배려로 매 주일 오전 9시 30분, 예배를 드리고 있다.
기자가 찾은 4일(주일), 예배 시작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뒤 한 집사님의 인도로 교회 뒤쪽 건물 어린이 교회에 들어갔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스마트폰에서 음악을 듣거나 수다를 떨기도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 성경을 읽는 아이들도 많았다. 아무래도 주일학교 숙제를 못해서 급하게 하고 있는 것인지 왁자지껄한 가운데서도 집중한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설교를 준비하고 있던 김로리 사모는 "오늘 선생님들 중에 몇 명이 빠져서 예배를 인도하는 선생님이 라이드를 갔어요. 조금만 기다리면 시작할 거에요. 설교는 세 명이 돌아가면서 하는데 오늘은 제가 해서 준비할게 많네요. 또 오후에는 난민 교회에 가서 설교도 해야 돼서 무지 무지 바쁜데 좀 이해해 주세요"하고 인사 아닌 인사를 건냈다.
예배의 시작을 기다리며 앉아있던 기자에게 두 여자 아이가 다가와 스마트폰을 건네며 뭐라고 했다. 처음에 알아듣지 못해 '아니'라고 했더니 대략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서길래 '무슨 일이니?'라고 물었다.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제 스마트폰 좀 갖고 있어 주실래요?"라는 부탁이었다. 갑작스러웠지만 낯선 기자에게 조차 쉽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 예뻐 '그래'라고 하니 얼른 맡기고 돌아가 율동을 하는 두 아이들.
더 재밌었던 것은 조금 있다 기자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을 한참 보고 슬며시 다가와 "그거 우리 언니 거랑 똑같은데...혹시 저 언니 거에요?"라고 물어온 동생이었다. 그 동생은 마치 기회를 엿봤던 것처럼 얼른 달라고 해서 가져가 버렸고, 그걸 눈치챈 언니는 삐죽거리면서도 상관 없다는 듯이 예배에 집중했다. 이후에도 몇 차례, '스마트폰 자매'는 오고 가며 기자의 주머니에 든 스마트폰을 아쉬운 듯 바라봤고, 틈만 생기면 빼갔다가 다시 넣고 가곤 했다. 참 순수한 아이들이다.
마치 전투와 같던 예배의 마지막...예수님 제자 되고 싶은 아이들 일어나
예배를 인도하는 스텝 한 명이 예배의 시작을 알리고 찬양을 인도하자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나게 찬양을 따라 하며 율동을 했다. 인도자 뒤에 두 줄로 선 친구들은 좀 더 훈련 받은 듯 정확한 찬양과 율동을 선보이며 예배를 함께 이끌어 갔다.
그런데 한가지...중학생 정도를 기준으로 어린 학생들은 앞쪽에서 열심히 참여했지만,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하는 청소년들은 뒤쪽에 앉아 찬양을 부르는 둥 마는 둥하고 율동은 당연히(?) 하지 않았다. 봉사자들 여럿이 장난치며 예배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을 달래기도 하고, 방으로 몰래 들어가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예배당에 나오기를 수 차례 반복하며 예배는 진행되고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에 관한 말씀을 들고 나온 김로리 사모는 명료하면서도 간단한 영어로 성경 속 예수님과 제자들에 관한 말씀과 수백 년 전, 예수님을 전혀 몰랐던 미전도 종족에게 나아갔던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자료와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작은 체구의 그녀는 쉼 없이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했고, 중간 중간 집중하지 않고 '지방방송'을 하는 청소년들을 재치 있게 지적해 가며 한 가지라도 아이들의 마음에 복음이 담기도록 애를 쓰고 있었다. 백 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마치 전투를 하는 듯했다.
설교의 마지막에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세요"라고 말하자, 열명 남짓의 아이들이 일어났다. 조금 망설이는 듯 싶더니 뒤쪽에 앉아 있던 중, 고등학교 남학생 몇 명도 일어났다. 선생님들은 각자 아이들에게 다가가 이들의 마음 속에 임하신 성령님께 감사의 기도와 함께, 이들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하는 듯했다. 큰 감동의 순간이었다.
이후 아이들은 학년별로 나눠져 성경공부에 들어갔다. 중, 고등학생들은 따로 방으로 들어가 말씀을 나눴고, 초등학생들은 대부분 예배당 곳곳에 상을 펴고 앉아 자원봉사하는 선생님들과 간단한 성경공부와 액티비티를 진행한 뒤 맛있는 간식을 나눴다.
간식을 준비하던 나이가 지긋한 자원봉사자는 "아휴...아이들이 많을 때는 130명까지 있었어요. 몇 달은 피자를 줬더니 지겨워 해서 지금은 빵이랑 칩을 주는데, 이것도 어느 정도 주면 질려 해요. 그땐 또 다른 걸 준비해 봐야죠"라고 분주하게 간식을 준비했다. 기자는 옆에서 120개의 컵에 물을 따랐고, 신라면 컵을 뜯는 일을 도왔다. 요즘에는 예배가 다 끝나고 축구를 연습하는 남학생들이 있어 이들을 위해 '신라면'도 다섯 박스나 사다 놓았다고 한다. '힘들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아니에요. 애들이 예배도 드리고 잘 먹으니까 신나고 즐거워요"라고 답했다. 손은 간식 준비로 바쁘면서도 성경공부가 끝나고 간식을 받으러 온 아이들에게 몇명인지 묻고 명수대로 간식을 빼고 더하는 솜씨가 한 두번 해본 것이 아니었다. 김로리 사모는 이 분을 두고 '여기서 사시는 분'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연령에 맞는 예배와 신앙교육'을 위해 다음주 부터는 중고등부는 따로 예배를 드리게 된다고 김로리 사모는 밝혔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큰 아이들이 좀 집중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자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예배 때 집중도 안하고 반항하는 것 같아도 일대일로 만나서 대화해 보면 참 순진하고 좋은 아이들이에요. 어린 아이들에 비해 영어 습득이 느리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힘들어 하는게 당연하지요. 따로 예배를 드리게 되면 더 수준에 맞는 예배와 성경공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교사와 봉사자들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라며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담아 덧붙였다.
간식 이후 태권도 시간과 축구 시간이 남았지만, 다른 일에 쫓겨 슬며시 짐을 챙겨 나오면서 예배당 밖에 놓인 신발들을 봤다. 비록 낡고 냄새 나는 신발들이었지만, 이 신발의 주인들에게 담아두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과 뜻이 무엇일지 뿌듯한 기대감에 가슴이 꽉 차는 시간이었다.
어린이 교회를 위하여 필요한 후원(장소 렌트비, 차편, 간식, 성경책, 학용품)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김영화 스탭 678-650-0399에게 연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