탬파초대교회 김인집 담임목사
(Photo : 탬파초대교회 김인집 담임목사) 

나는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시골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얼마나 시골인가하면, 한국의 지리에 왠만큼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도 매우 생소한 경상북도 군위군이라는 지역이다. 얼마 전에 매스컴에서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도시"라고 군위군에 대해 소개한 기사가 있었을 정도이다. 아버지가 군위군의 읍내 교회 담임 목사로 계실 때, 나는 읍내 중학교로 진학했고, 작은 시골학교에 1등으로 입학하는 바람에 반장까지 하게 되었다. 그 작은 도시에서 과분한 칭찬과 주목을 받던 어린시절을 보냈다.

성격이 활달하고 장난도 잘 치고 끼도 많았고 목소리도 커서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게다가 읍내교회 목사 아들이었고, 반장이었으니 선생님들이 믿어 주시고 일을 맡겨주실 때가 많았다. 작은 일들을 도와 드리다가 어떤 날은 시험 채점을 도와 드리기도 하였다. 학교는 대구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이라 선생님들 대부분이 대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출, 퇴근을 하셨다. 여자 선생님들은 당시 대부분 30대 셨고,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이 있거나 아이를 낳는 기간 중에 있으셔서, 종종 교생 선생님으로 대체되기도 하였다. 대구로 들어가는 막차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특히, 여선생님들은 학교에 늦게까지 머물 수 없으셨다.

어느날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호출을 받았고, 선생님께서 국어과목과 사회과목 답안지 뭉치를 주시면서 시험 답안지 채점을 부탁하셨다. 학생들이 하교하고 선생님들도 학교를 떠나신 후에 혼자 과학실에 들어가서 채점을 시작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같은 내신시험은 아니었고, 월례고사로 기억한다. 정식으로 성적에 들어가는 시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긴장도 되고, 등수도 발표되어서 신경이 쓰이는 시험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채점해야 할 답안지에 우리 반 것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내 답안지도 들어있다는 의미였다. 아무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채점을 해야 하는데, 사람은 감정과 의지가 있는 존재였다. 내 답안지를 먼저 찾아서 채점을 해 보았고, 그리고는 내 친구들 답안지를 찾아서 점수를 확인해 보려고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을 수 있었다. 나머지 채점을 다 하고 박스에 잘 넣어두고 집에 가면 되는데....

시험점수에 의문이 생겼다. 사회과목은 다 맞았는데, 국어과목에서 4개나 틀린 것이었다. 가 채점할 때 2개 틀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4개가 틀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서 멈추었어야 했는데, 내 답안지를 찾아서 2개를 고쳐서 2개만 틀리게 조정을 했다. 거기서 멈추지 못하고, 친구들 시험지도 찾아서 2개씩 고쳐주었다.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고, 성적에 들어가는 시험도 아니고, 원래 나는 2개 밖에 안 틀렸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뭔가에 홀린 듯이 채점부정을 저지르고 말았다.

학급 시험성적은 괜찮게 나왔고, 선생님도 만족해 하셨고, 채점을 도와드렸던 저에게도 수고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렇게 지나갔으면 역사에 묻힐 뻔 했는데, 평소에 점수에 크게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 국어시험 점수가 이상하다고 손을 들고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이 살펴보시더니 선생님이 정답을 잘못 주셨다고 하셨다. 2문제가 오답과 정답이 바뀐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점수가 수정되어야했다. 원래 내가 쓴 답이 맞았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4개 틀린 것으로 채점되었다가 2개 틀린 것으로 수정이 되어야했는데, 답안지를 건드렸기 때문에 문제가 꼬이고 말았다. 내 몇몇 친구들도 같은 상황이 되어서 혼란이 일어났다. 선생님은 재빨리 사태를 파악하셨고, 문제가 더 커지지 않게 학생들이 자신이 쓴 답으로 주장하는 것으로 다시 채점을 하셨다.

교무실에 불려갔다. 선생님과 한참을 마주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아무리 반장이고, 목사 아들이고, 크리스천이라고 하지만 어린 아이에게 너무 큰 일을 맡긴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스스로 우등생이며 모범적인 학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형편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너무 너무 부끄러웠다. 여름수련회 때 밤새 기도하며 눈물 흘렸던 시간들이 다 허위이고, 위선인 것 같아서 너무 괴로웠다. 나의 지위와 인정과 신용이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착각이 들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 일로 13살 인생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을 너무 믿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자신도 믿어서는 안된다. 건전한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야하고, 감시도 받아야하고, 감사도 받아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험채점을 하거나, 재정지출을 할 때는 꼭 두명 이상이 함께 해야한다는 것도 그 때 깨달았다. "아니, 나를 못 믿는다는 말인가?" 흥분할 일이 아니다. 사람을 믿어서는 안되고, 공동체가 합의한 법과 원칙을 믿어야 한다. 누구나 그 법과 원칙의 지배를 받아야한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교수도, 담임목사도... 그 누구라도 법과 원칙의 지배를 받아야한다.

내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나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펼쳐 보여지고 있다는 신전의식을 가져야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성경적 기준에 바탕한 법과 기준을 잘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장로교 정치제도를 존중하고, 국가의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삼권분립을 지지한다. 지도자가 되면 법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법질서에 더욱 민감하고 높은 기준을 가져야한다. 권력은 오용되거나 남용되면 안되고, 견제와 균형 속에 건전하게 발휘되어야한다.